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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6/14,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6-14 14:49 조회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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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4일(일) 6월 둘째주 일요법회가 석두스님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법문에 앞서 보현행자의 서원 "회향분"을 다함께 합송합니다. 

"바라옵나니 저 모든 중생이 모두 해탈하여 무상보리를 성취하여지이다.

 제가 지은 공덕은 일체 중생의 공덕이 되어 저들의 미혹한 마음이 활짝

 밝아지오며, 불보살이 이르신 바 모든 공덕을 수용하고 불국토의 청정광명을

 영겁토록 누려지이다."   _회향분 中

 

오늘 석두스님의 법문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입니다.

스님의 법문 영상보기는 금강정사 유튜브 채널에서 함께 하실수 있습니다.

https://youtu.be/RwV69Xqvte4


사회는 도안거사님, 집전은 법등거사님, ppt 등광심보살님, 발원문 낭독은 

신도님들을 대표해서 문수2구 혜경화보살님께서 수고해 주십니다. 

 

문수2구(명등 지승 김성곤)의 맛난 국수로 점심공양을 준비하구요.

도량안내는 덕산거사님, 무명거사님, 홍인거사님도 수고해 주셨네요.

오늘도 움직이는 가피는 신도님들을 맞이합니다~~~ 

 

법회후 설법전에서는 보리수구 식구들과 73기 기본교육 수료생 식구들이 향산스님을 

모시고 차담을 나눕니다. 이번 73기 교육수료생 식구들은 7월달 법등을 창등하고

보리수구로 소속되어 신행활동을 이어갈 예정으로 상견례 겸 인사나누기로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차한잔 나눔으로 녹아듭니다.. 활발발 신행활동을 응원합니다~~~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며

함께해 주신 모든분들께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오늘 법회현장...사진소식으로 함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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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도선사 총무 석두스님


極小同大(극소동대)하야 妄緣境界(망연경계)하고

極大同小(극대동소)하야 不見邊表(불견변표)라.

“지극히 작은 것은 큰 것과 같아서 경계가 모두 끊어지고

 지극히 큰 것은 작은 것과 같아서 변표를 볼 수 없음이라.”


지극히 작은 것은 현실에서 우리 육안으로는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방 안에서 발생하여 공기 중에 떠다니는 먼지는 분간할 수 없으나, 한 줄기 빛을 반사하게 되면 작은 것도 볼 수가 있게 됩니다. 일상에서 작은 것은 현상적으로는 볼 수가 없지만, 여기서는 심안(心眼)으로 보게 된다면 모든 사물은 그 형태적 크기에 있어 크고 작음으로 나누어 질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작은 것의 표면을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육안으로 분별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가진 형태의 것은 그 표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지극히 큰 것인데도 표면(변표)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예를 들어 달은 지극히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에서는 달의 표면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달에 우주선을 보내 근거리에서 관찰하면 달의 표면을 자세히 볼 수가 있게 됩니다.

달의 크기가 크다 작다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기준점이 무엇인가에 따라, 관찰자와의 거리가 얼마인가에 따라, 무엇을 중심으로 비교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는 작을 수도 클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큰 것이 작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작은 것이 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교하고 분별하려는 의도가 내포된 모든 관찰과 판단은 그릇될 가능성이 높게 됩니다. 되도록이면 선입관을 내려놓고, 순수한 시각으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有卽是無(유즉시무)요 無卽是有(무즉시유)니

若不如比(약부여비)면 必不須守(필부수수)라.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요,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니

 만약 이와 같지 아니하면, 모름지기 지킬 것이 아니니라."


사실 불교를 잘 모르는 부류의 사람들에게‘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이 교리를 납득시키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눈앞에 현존하는 것이 없다고 하니, 상식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 여타의 모든 종교에서는 항상 현상 너머의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진리를 추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상식 이상의 탐구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력을 통해서 보다 넓은 인식의 세계로 나아가서, 현실적인 고통의 원인을 이해하게 되는 동시에 벗어날 수 있는 인연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얻은 통찰력으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높이고, 사물의 참모습에 접근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야부 경전의 핵심 요약본인 (반야심경)을 보면 나의 몸을 구성하는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심지어는 대상을 지칭하는 색성향미촉법도 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상 모든 것이 다 없다고 하니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종교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너머의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늘 우리의 인식의 한계 때문일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차갑지만 냉철하게, 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문제를 응시한다면 야기된 문제들이 대부분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서 온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나’라는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의 것’이 생기고, 나 이외의 대상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나’라는 존재는 ‘안이비설신의’라는 인연의 종합체일 뿐임을 깨달으시니, ‘나’라는 생각으로부터 발생했던 많은 문제들이 소멸됨을 보셨습니다. ‘나’를 철저하게 파괴하여 ‘무아’라고 하셨습니다. 비로소 나의 굴레를 벗어던지니 온 세상이 하나의 꽃임을 아시게 된 것입니다. 


“노승이 삼십 년 전 선(禪)을 참구하기 전에는 (老僧 三十年前 未參禪時)

  산을 보면 산이라 하고, 물을 보면 물이라 했다. (見山是山 見水是水) 

  나중에 선지식을 만나 깨달음에 들어서니 (及至後來 親見善知識 有箇入處)

  산을 보아도 산이 아니요, 물을 보아도 물이 아니었다(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이제 확연히 깨닫고 휴식처를 얻고 나니 (而今得箇 休歇處)

  예전과 같이 산을 보면 다만 산이요, (依前 見山只是山 見水只是水)

  물을 보면 다만 물이로다. 대중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大衆 這三般見解 是同是別) 

  

- 송대 청원유신(淸原惟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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