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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주 일요법회(7/12,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7-12 15:26 조회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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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둘째주 일요법회가 석두스님 법문으로 여법하게 봉행되었습니다. 

 

법문에 앞서 보현행자의 서원 "찬양분"을 다함께 합송합니다. 

"말은 이것이 위대한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사온 바, 저희들은 

참된말을 바로 써서 말의 위력을 실현하겠습니다.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겠사오며, 나쁜 말을 하지 않겠사오며, 참된 말만을 하겠습니다. 

결코 소극적이며, 부정적이며,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찬양분 中

 

오늘 석두스님의 법문주제는 "길없는 길"입니다. 

석두스님의 법문영상은 금강정사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https://youtu.be/1BKwcxSlBGU

 

새벽기도 신도님들은 대웅전 계단을 물청소로 이른 아침부터 법회를 준비하구요

문수2구(명등 지승 김성곤) 식구들은 맛난 점심공양을 냉국수로 준비합니다.

이곳저곳에서 법회의 원만봉행을 위해 수고해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와 찬탄의 박수를 올립니다. _()_

 

추가) 체험관 불사의 원만성취를 발원하며 오늘부터 상량함 복장용 한글 반야심경 사경을 

시작합니다. 불사원만성취 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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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없는 길


                      북한산 도선사 총무 석두스님


一卽一切(일즉일체)요 一切卽一(일체즉일)이니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但能如是(단능여시)하면 何慮不畢(하려불필)가

“다만 이와 같이만 된다면 어찌 마치지 못함을 염려하겠는가”


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이 선사를 찾아와 묻기를

“‘수미산에 겨자씨를 넣는다’는 말은 알겠으나,‘겨자씨에 수미산을 넣는다’는 경전의 말은 거짓이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선사 왈 “그렇다면 당신 몸 어디에 만권의 책이 들어 있을꼬?”


이 일화는 마조선사의 법통을 이은 귀종(歸宗)선사와 만권의 책을 읽은‘이만권’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발과의 법담입니다. 


생리학적으로 인간의 몸은 아주 작은 세포들의 집합체입니다.

또한 몸을 구성하는 세포는 그 보다 더 작은 단백질로, 그 단백질은 다시 더 작은 핵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작은 것들이 모여 더 큰 유기체를 형성합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의 어머니와 같으니, 작은 것이 없다면 큰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주 생성의 초기 단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주 작은 원소들이 뭉쳐 광활한 우주를 만들었습니다. 나의 몸은 우주의 생성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며, 

나는 동시에 우주의 자손입니다.


또한‘10’이라는 숫자 역시‘1’이 열 번 거듭 모여 이루어집니다. 

따라서‘1’이 없으면‘10’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10과 1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습니다. 


나와 우주는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내가 없는 우주는 존재할 수 없으며, 우주가 없는 나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연기’입니다. 그 본질이 비어 있기 때문에 (공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연기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信心不二(신심불이)요 不二信心(불이신심)이라

“신심은 둘이 아니며, 둘이 아닌 것이 신심이라.”


言語道斷(언어도단)하고 非去來今(비거래금)이로다

“언어의 길이 끊어져서 과거 미래 현재가 아님이로다.”


불교에서 말하는 信心은 타종교에서 요구하는 그런 종류의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 주체와 믿는 객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믿고, 내가 나의 주체성을 믿고, 내가 나의 부처됨을 믿는 것입니다. 

밖에서 벌어지는 믿음이 아니라, 안에서 발생하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납득 시켜야만 합니다.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탐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놈은 누구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연이어 이어지고, 결국에는 그 생각이라는 자리마저 사라질 때, 비로소 진정한 참된 나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익숙하게 안다고 생각되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피상적인 언어가 만들어 놓은 모습일 뿐입니다. 


空手把鋤頭(공수파서두) “빈손으로 호미를 잡고”

步行騎水牛(보행기수우) “걸어가면서 물소를 탔네”

人從橋上過(인종교상과) “사람이 다리 위로 지나가는데”

橋流水不流(교류수불류) “다리는 흐르고 물은 흐르지 않네”  

                                                               - 야부스님 -


야부선사께서 쓴 위 선시는 언어의 허와 실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언어는 생각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三世(과거 미래 현재)에 사로잡힌 인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실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본질이 아니라, 보조 도구일 뿐입니다. 언어를 떠난 자리, 바로 그 자리에 진실된 실체가 드러납니다. 언어에 갇혀있고, 몸에 끄달리고, 뇌의 망상에 사로잡힌 존재가 우리들입니다.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참된 나와 만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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